언론보도

20년 간 '사망자'로 살던 여성, 다시 주민으로 돌아오기까지. 금천 경찰서 고 경감의 집요한 복원

  • 2026-02-26

20년 간 '사망자'로 살던 여성, 다시 주민으로 돌아오기까지. 금천 경찰서 고 경감의 집요한 복원

“그냥 한 번 출동하고 끝났다면, 아직도 주민등록 없이 술에 의존해 살고 있었을 겁니다.”

25일, 서울 금천경찰서 독산파출소에서 만난 고병진 경감은 인터뷰 내내 ‘도움’이라는 단어를 반복했다. 

그는 “사회적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을 돕는 게 경찰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왔을 뿐”이라며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가 한 일은 단순한 민원 처리를 넘어선 것이었다. 행정상 ‘사망자’로 남아 있던 한 사람을 다시 ‘존재하는 사람’으로 되돌려 놓은 일이었다.

 

사건의 시작은 지난해 5월이었다.

“윗집에서 여성이 계속 소리를 지른다”는 112 신고가 접수됐다. 

 

현장에 출동했을 때 50대 A씨는 만취 상태였다. 

막대기로 바닥을 내리치며 고성을 지르고 있었고, 상황만 놓고 보면 경범죄 처리 대상이었다.

문제는 신원 조회 과정에서 드러났다. A씨는 2001년 실종 신고 이후 사망 처리된 상태였다. 행정 시스템상 이미 ‘없는 사람’이었다.

 

고 경감은 다음 날 다시 A씨의 집을 찾았다.  동거 중이던 남성을 만나 사정을 들었다. 

과거 주민등록 복원을 시도하려 했지만, 절차를 정확히 알지 못했고 생계 문제로 손을 놓은 상태였다는 설명이었다. 

단순한 무관심이 아니라 제도 접근의 벽에 가로막힌 상황이었다.

 

고 경감은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대한법률구조공단과 협력해 실종선고 취소 심판을 청구했다. 

복잡한 법적 절차를 대신 정리하고 필요한 서류를 챙겼다. 그 결과, 2025년 8월 A씨는 공식적으로 주민등록을 회복했다. 

20여 년 만에 행정적으로 ‘생존’이 확인된 것이다. 하지만 고 경감의 지원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기초생활수급자 등록, 관심 대상자 지정, 주거지원비 지급까지 후속 조치를 이어갔다. 

건강 상태를 고려해 알코올 중독 치료 병원 입원도 연결했다. 퇴원 이후에도 상담이 지속되도록 요청했고, 구청 차원의 방문 청소와 도시락 지원, 공공근로 일자리 알선까지 협조를 구했다.

그는 “누구나 사람답게 살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20년 넘게 행정 지원 없이 술에 의존해 살아왔지만, A씨에게는 삶을 바꾸려는 의지가 보였다고 했다. 

그 가능성을 외면하지 않은 것이 이번 조치의 출발점이었다. 다만 그는 공을 혼자 차지하지 않았다. 

 

“구청과 여러 관계 기관이 함께 도와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강조했다. 

개인의 헌신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제도와 협력이 맞물려야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의미이다.

 

고 경감은 1995년 강원 정선에서 경찰 생활을 시작했다. 

수사과와 강력반, 지역 파출소를 두루 거쳤다. 그는 “경찰은 국민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일하는 직업”이라고 말한다. 

교통사고 현장에서 생명을 구하기도 하고, 강력 사건을 해결하기도 하며, 때로는 잃어버린 반려동물을 찾아주는 일까지 맡는다. 도움의 형태는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는 설명이다.

 

이번 사례로 고 경감은 경찰청 제2차 특별성과 포상 대상자로 선정됐다. 

그는 “포상이 뿌듯하긴 하지만, 그만큼 책임도 무겁다”고 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는 경찰을 꿈꾸는 수험생들에게 한마디를 남겼다. 

“간절히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 수 있는 직업입니다. 사명감을 갖고 각자의 분야에서 역량을 발휘하길 바랍니다.”

 

20년간 ‘사망자’로 기록됐던 한 사람은 다시 행정상 이름을 되찾았다. 출동 한 번으로 끝날 수 있었던 사건이었지만, 한 경찰의 집요함은 누군가의 삶 전체를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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